오늘은 무료 봉사 커트를 했다.
그동안 다양한 분들을 만났지만 오늘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의자에 앉자마자 여러 가지
요구사항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용을 정리해 보면 핵심은 하나였다.
"조금만 다듬어 주세요."
머리 상태를 살펴보니 후두부 쪽은
모량이 많아 약간의 정리가 필요했고,
반대로 측두부는 모량이 적어 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후두부 쪽만 틴닝가위로
모량을 조금 조절했다.
측두부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드렸다.
그런데 그 분은 측두부도 더
솎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요청에 따라 틴닝가위로
찔러 깎기를 한두 번 했는데,
갑자기 그분이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잘랐다며 언성을 높였고,
순간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머리는
거의 자르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틴닝가위로 몇 번 명암만
조절한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에도 이렇게 화가 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문제는 머리카락의 길이가 아니었다.
문제는 고객이 머리를 바라보는
기준이었다.
사람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머리 모양이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본인에게는 아주 큰
차이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매우 섬세하고
민감한 사람도 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가
"앞으로는 경력이 많은 이용사에게
커트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오히려
"경력 있는 사람들은 쿠세(일본어: 버릇, 습관)
가 있어서 자기 방식대로 자른다."
"여기 오는 분들은 순수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조금은 이해가 됐다.
이 분은 머리를 잘 자르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정확히 이해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요구하는 대로 정확히 잘라 줄 사람.
근데 그 요구사항이 아주 많이
민감하고 까다롭다는 게 문제다.
오늘 일을 겪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머리는 이용사의 기준으로 자르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보기에 예쁜 머리,
내가 생각하는 좋은 스타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물론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
전문가로서 말려야 할 부분도 있고,
설명해야 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고객의 기준을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은 솔직히 마음이 조금 상했다.
무료 봉사 커트였고,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은 늘 교과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
오늘의 교훈.
좋은 커트는 좋은 상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좋은 상담은 고객의 기준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현장에서 하나를 배웠다.
비록 쉽지 않은 하루였지만,
그 또한 바버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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