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에 다녀왔다.
집에 들어서자
예전과는 조금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부모님의 모습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만 88세의 아버지와 어머니.
걸음은 느려지고,
말수도 줄어들고,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시던 일들도
이제는 힘에 부쳐 보인다.
어제는
어머니가 기운 없이
계속 누워만 계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울먹이시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며칠만이라도… 병원에 입원하면 안 되겠느냐…”
그 말 속에는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장면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내 일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더 큰 두려움은
그 과정에 대한 것일지 모른다.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
대소변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
그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가 되는 것.
그것이 두렵다.
나 역시 그렇다.
죽음이 두렵기보다,
그렇게 살아가야 할 마지막 시간이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죽음을 피하려 하기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삶을
조금 더 정리하며 살아가는 것일 수 있다.
미루어 두었던 관계를 돌아보고,
괜한 미움이나 후회를 줄이고,
남아 있는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것.
그리고
내가 떠난 이후를 걱정하기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 더 소중하게 대하는 것.
부모님을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죽음은
결국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두려움 속에서 밀어내며 살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으로
조용히 받아들일 것인지.
나는 이제
조금씩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불안으로 채우기보다는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다.
고향에서 돌아오는 길,
이런 생각이 오래 남았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삶을 더 또렷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만 그 속도와 시간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정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참으로
심란하고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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