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는 일도 없는데 몸이 말이 아니었다.
시간은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몸과 마음이 상하니 하고 싶은
의욕마저 사라지고 계속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늘 피곤했다. 입 맛도 없고 기운도 없고,
시도 때도 없이 잠만 자게 되고,
자고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자 있으면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면 될까?
이 나이에 늦은 건 아닌지 하루에도 수많은
일을 상상하고 계획해 보았다.
그렇게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겠구나.
나는 완벽하고 확신이 있어야 실행하는
타입이다. 그러니 시작도 해 보기도 전에
계획만 세우다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거꾸로 해 보자.
계획이 아니라 작게라도 실행이 먼저다.
이렇게 단순 결론에 도달하니 머릿속의
뿌옇던 안개가 거치는 듯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
쉽게 알 수 있었다. 건강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래!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끝이다.
몸부터 다시 움직여야겠다.
집 근처 탄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그러다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도, 기록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시간만큼은 머릿속이
조용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숨이 차오르면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생각은 뒤로 밀려났다.
달리고 나서 잠시 앉자 있노라면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얼굴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 느낌, 그 쾌감이 너무 좋았다.
샤워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는구나.
달리기를 시작하고 9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슬로우 러닝으로 10~15km를 달리고
있다. 몇 백 미터를 천천히 달리는 것조차
버거웠던 나에게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퇴직 전후, 심적 갈등으로 수개월 동안
멈추었던 등산도 다시 시작했다.
달라진 건 서울, 경기권만 반복해서 오르다가
블랙야크 100대 명산 앱을 깔고, GPS
발도장을 찍으며 중복 없이 정상 인증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완등하고 달리기도 꾸준히
할 것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달리기에도 목표를 가진다면 서두르지 않고
몸이 말하는 대로 천천히 10km, 하프마라톤
그리고 풀코스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대회까지 도전해 보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등산과 달리기는 나에게 있어 완등과
완주를 이루고자 함이 아니다.
삐걱거리는 몸과 자꾸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다.
우울과 불안은 생각으로 떨쳐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창업을 하려면 사업계획서 먼저 쓰라고.
그러나 이는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지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거꾸로 해보는 거다. 작게라도 실행부터.
퇴직 이후의 삶은 생각보다 길다.
30년이 될 수도 40년이 될 수도 있다.
그 긴 시간을 견디려면 무엇을 하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이 서 있어야 한다는 걸
겪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러기에 퇴직 후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다만, 몸과 마음부터 다시 세우자.
'은퇴 이후, 돈을 다시 설계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은퇴 이후, 불안해서 이것저것 막 해봤다. (0) | 2026.01.03 |
|---|---|
| 정년 이후, 돈과 일을 설계하며 기록하는 이야기 (0) | 2026.01.02 |
| 61세, ' 아, 나는 다시 돈을 벌어야 살겠구나.' (0) | 2026.01.02 |
| 정년, 달리던 기차에서 나는 내려져 있었다. (0) | 2026.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