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기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내려진 이라 표현하고 싶다.
내가 멈추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속도를 늦추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아무 준비도 없이 선로 옆으로
밀려난 기분이었다.
1991년 입사하여,
34년 동안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왔던 시간들.
그 많은 시간을 뒤로하고 퇴직을 앞두고 있던 그 무렵,
퇴직 일이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속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함과 초조함이 커져갔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억지로 몇 숟가락을
뜨다 내려놓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의도치 않게 몸무게가 무려
7kg 이상이나 빠져 있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감당하지 못하는 불안을.
정년이라는 말을 그전까지는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입버릇처럼 정년을 대비하고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머리로만 생각했을 뿐,
정작 그 단어가 내 이름 앞에 붙는 순간이
올 거라고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대책도 없이.
정년은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만큼
엄청난 충격 자체였다.
머리로만 알고 행동이 없었던 나의
어리석음을 얼마나 자책하고 또 자책했는지 모른다.
우울했다.
" 나는 지금까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었던 걸까? "
달리던 기차에서 내려지고 보니 주변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같았다.
플랫폼도, 안내판도 없이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다음 기차는 언제 오는지,
아니, 기차가 오기는 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앞으로의 삶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
●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질문에 난 단 하나도 답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살았잖아 "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내 안에서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느낌이었다.
일이 사라지자 역할도, 자리도, 방향도 함께 사라졌다.
자존감은 바닥을 구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글은
2025년 1월, 그 시기에 나를 붙잡아 두기 위한 기록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감정을 희미하게 미화해버릴까 봐,
지금 그때의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 허탈감 그리고 멈춰버린
미래에 대한 막막함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남겨두고 싶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나와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다.
이러한 감정은 이상한 게 아니다.
아주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 글을 시작으로 나는 정년 후의 삶을 하나씩
기록해 보려고 한다.
1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 답은 없다.
다만, 멈춰 있지는 않으려고 한다.
'은퇴 이후, 돈을 다시 설계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퇴직하고 제일 먼저 무너졌던 건 몸과 마음이었다. (0) | 2026.01.04 |
|---|---|
| 은퇴 이후, 불안해서 이것저것 막 해봤다. (0) | 2026.01.03 |
| 정년 이후, 돈과 일을 설계하며 기록하는 이야기 (0) | 2026.01.02 |
| 61세, ' 아, 나는 다시 돈을 벌어야 살겠구나.' (0) | 2026.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