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설 연휴에 찾아뵙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뵈었다.
서해대교를 건너는 길은 늘 비슷하지만,
그 다리를 건너는 마음은 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나는 요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산소를 찾는
것보다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런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좋고,
대단한 이벤트가 없어도 좋다.
그저 함께 앉아 먹고, 마시고,
웃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요즘에는
내가 이발을 배우고
부모님 두 분의 머리를 깎아드린다.
어머니는 두 번째,
아버지는 세 번째 커트다.
가까운 이발소나 미용실에 가시면 되겠지만
시골에서는 그마저도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사실 이 커트는
편의나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이 시간은 조금 특별하다.
내가 이발을 배우지 않았다면
두 분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머리를 직접 깎아드릴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용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선택에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커트를 마치고 났는데
아버지가 조용히 돈을 꺼내신다.
10만원이다.
손사래를 치며 안 받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시다.
3월에 보는 이용사 실기시험에 꼭 합격하고,
이용사로서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며
주시는 돈이라고 하신다.
그 마음을 알기에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88세의 아버지가
62세의 아들에게 주신 커트비 10만원.
이 돈은
내가 이발을 배우고 받은
첫 커트비이자
아마도 가장 비싼 커트값일 것이다.
단순 남자 커트에 아마도
10만원짜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이 돈에는
기술에 대한 값보다
아버지의 기대와 응원,
그리고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들어 있다.
그래서 더 무겁고, 더 귀하다.
두 분이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내가 진짜 프로페셔널 이용사가 되어
지금보다 더 멋지게,
계속 머리를 깎아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처럼 그때마다
회 한 접시 놓고
술 한잔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의 커트는
머리를 다듬은 시간이 아니라
88세의 아버지 어머니와 62세의 자식이
같은 시간을 건너며 마음을 나눈 기억이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도
그 기억을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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