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도움이 되었던 3가지
우울할 때는
누군가의 말이 위로가 되기보다
부담이 될 때가 많았다.
“힘내라”, “괜찮아질 거다”
그 말들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 어떤 말도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언도, 설명도, 이해도
필요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버텨야 했다.
1. 이유 없이 몸을 움직이는 시간
생각이 복잡할 때
나는 그저 걷는 듯 달렸다.
목적도 없고
계획도 없고
의미도 붙이지 않았다.
땀을 흠뻑 흘리고
샤워를 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큰 위로였다.
운동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그 시기에 책은
나에게 스승이었고
조용한 위안이었다.
말 걸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옆에 있어주는 존재 같았다.
축 늘어져서
잠만 자고 있으면
몸도 마음도 같이 무너진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하고 싶었던 걸 해봤다.
누군가에게 묻지도 않고
스스로에게조차 따지지 않았다.
“이게 맞나?”
“이게 도움이 되나?”
그 질문 자체를 멈췄다.
그냥 움직였다.
그냥 해봤다.
그러다 보니
아주 천천히,
정말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었다.
2.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 공간
사람을 만나는 게 버거웠다.
잘 지내냐는 말에도
대답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숨었다.
혼자 있는 시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조용히 글을 쓰고
누군가의 글을 읽는 시간.
거기서는
잘 사는 척하지 않아도 됐고
괜찮은 사람인 척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오늘도 하루를 버텼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3. 나를 재촉하지 않는 태도
가장 오래 걸렸던 건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예전의 나는 늘 말했다.
“왜 이렇게까지 무너졌어?”
“이제 일어나야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바뀌었다.
“지금 이 상태도,
너 나름 최선을 다한 거야.”
그 말을 믿지 못해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나를 더 몰아붙이지 않는 것이었다.
빨리 회복하지 않아도
의욕이 없어도
그 자체가 실패는 아니었다.
마무리하며
우울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숨이 막히던 시간 속에서도
숨 쉴 수 있는 순간들은 생겼다는 것이다.
아무 말도 듣기 싫을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그건 이상한 상태가 아니다.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다.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 당신은 이미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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