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은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퇴직은 삶의 축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경험이었다.
오랜 시간 일과 역할 중심으로 살아왔던 나는, 퇴직과 동시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도 사라진 것 같았다.
특히 한국 사회는 직업을 개인의 가치와 강하게 연결한다.
그래서인지 퇴직 이후 나는 스스로를 향해
“이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게 되었다.
그 질문은 생각보다 깊게 마음을 파고들었고, 어느 순간 상실감과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내가 겪은 상실감과 우울증의 모습
퇴직 후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상실감’이었다.
직장을 떠났다는 사실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동안 나를 설명해 주던 역할·지위·일상의 루틴을 한꺼번에 잃었다는 감각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공허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점점 우울증의 형태로 바뀌어 갔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은 증상들을 분명히 겪고 있었다.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지속적인 의욕 저하
- 수면과 식사 시간이 무너진 일상 루틴의 붕괴
- 사람들과 연락을 피하게 되는 사회적 고립
- “나는 이제 필요 없는 사람이다”라는 자존감의 붕괴
- 미래를 생각하면 이유 없이 밀려오는 불안과 자기비판
- 두통, 소화불량 같은 신체적 통증
- 밤에 잠들지 못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잠을 자는 수면 장애
특히 남성인 나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에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랐던 나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한, 현실적인 극복 방법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은
‘거창한 긍정’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변화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자”는 말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1. 하루 루틴을 다시 만들다
퇴직 후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이 시간 감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단순한 하루 흐름을 만들었다.
- 같은 시간에 기상하기
- 짧은 산책
- 아침 식사
- 독서나 글쓰기
- 취미 시간
대단한 계획은 아니었지만, 이 반복이 뇌에 안정감을 주기 시작했다.
하루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 사람과의 연결을 다시 붙잡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감은 더 깊어졌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사람들과의 연결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오랜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도 했고,
지역 모임이나 관심 있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느꼈다.
사람과의 연결은 생각보다 강력한 회복 장치라는 것을.
3. 감정을 글로 꺼내 놓다
내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었던 방법은 글쓰기였다.
이 블로그 또한 그 중에 하나이다.
일기처럼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적어 내려가면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은,
내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오래 버텨왔다는 사실이었다.
4. 전문가의 도움을 부정하지 않다
우울감이 일정 수준 이상 지속되자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선택했다.
상담을 통해 내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조언을 받으면서
“혼자 견뎌야 할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5. 새로운 역할을 스스로 만들어 가다
퇴직은 역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나는 블로그 글쓰기, 달리기, 쇼핑몰 배움, 그 외 이용사 같은 새로운
도전들을 통해 다시 나만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는 마음관리 습관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예전보다 나를 훨씬 잘 돌보고 있다는 점이다.
- 아주 작은 성취라도 기록하며 스스로를 인정하기
-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기
- 매일 감사한 일을 적어보기
-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예전보다 관대해지기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하겠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경험해 보니, 시작을 막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결론: 퇴직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퇴직은 끝이 아니었다.
그저 삶의 형식이 바뀌는 지점이었을 뿐이다.
우울감과 상실감은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누구나 거쳐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이 글이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가 되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작은 실행일지라도
하루에 단 하나의 작은 루틴을 만들어 보자.
당신의 경험은 여전히 가치 있고,
당신의 인생 2막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삶은 아직, 우리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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